옛날 기자(箕子)의 후예인 조선후(朝鮮侯)는 주(周)나라가 쇠퇴하자 연(燕)이 스스로 높여 왕이 되어 동쪽으로 땅을 침략하려 함을 보고, 역시 스스로 왕이라 일컬으며 병사를 일으켜 연을 치고 주 왕실을 받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대부(大夫)인 예(禮)가 간하여 중지하였다. 예를 사신으로 보내 연을 설득하니 연이 계획을 중지하고 공격하지 않았다. 그 뒤 자손들이 교만하고 사나워졌으므로 연은 장군 진개(秦開)를 보내 조선의 서쪽을 공격하였다. 2천여 리의 땅을 빼앗고 만번한(滿番汗)을 경계로 삼으니 조선이 드디어 약해졌다. 진(秦)나라가 천하를 아우름에 이르러 몽념(蒙恬)을 시켜 장성을 쌓아 요동에 이르렀다. 이 때 조선왕 부(否)는 진이 자기 나라를 습격할까 두려워 책략으로 진에 복속하였으나 조회(朝會)는 하지 않으려 하였다. 부가 죽고 그 아들 준(準)이 왕이 된 지 20여 년에 진항(陳項: 진승과 항우)이 일어나 천하가 어지러워졌다. 연, 제(齊, 조(趙)의 백성들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점차 준에게 도망갔다. 준은 이들을 서쪽 지방에 와서 살게 하였다. 한(漢)나라에서 노관(盧 )을 연왕으로 삼자, 조선과 연은 패수(浿水, 추수( 水) 또는 격수( 水)로 보는 입장도 있음)로 경계를 이루었다. 노관이 반란을 일으키고 흉노(匈奴)로 들어가자 연나라 사람 위만(衛滿)이 망명하였다. 호복(胡服)차림으로 (사기 조선전에는 상투를 틀고 오랑캐 복장을 하였다고 되어 있음) 동쪽으로 패수를 건너 준왕에게 가 항복하고 서쪽 국경 지방에서 살게 하여달라고 청하였다. 또한 중국에서 망명하는 사람들을 거두어 조선의 번병(藩屛)으로 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설득하였다. 준왕은 위만을 믿고 사랑하여 박사(博士)로 삼고 규(圭)를 주어 백리의 땅을 봉하여 서쪽 변방을 지키도록 하였다. 위만이 망명해 오는 사람을 꾀니 그 무리가 점점 많아졌다. 이에 위만은 거짓말로 준왕에게 사람을 보내 한나라 군사가 열 군데 길로 쳐들어오니 들어가 지키겠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결국 준왕을 공격하였다. 준왕은 위만과 싸웠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좌우의 관인을 거느리고 달아나 바다를 건너 한(韓) 땅에 살면서 스스로 한왕(韓王)이라 하였다.

 

출전 :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한(韓) 인용 위략(魏略)


Posted by 빈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