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옥저'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9.02.27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 1

삼국지 위서 동이전
동옥저(東沃沮)

 동옥저는 고구려 개마대산(蓋馬大山)의 동쪽에 있다. 큰 바닷가에 연해 산다. 지형은 동북간이 좁고 서남간은 길어서 천리 정도는 된다. 북쪽은 읍루( 婁), 부여와, 남쪽은 예맥과 접해 있다. 호수는 5천 호이다. 대군장이 없으며 읍락에는 각각 대를 잇는 우두머리(將帥)가 있다. 그들의 말은 구려와 대체로 같지만 경우에 따라 좀 다른 것도 있다. 한나라 초에 연의 망명자 위만이 조선왕이 되면서 옥저는 모두 복속하게 되었다. 한 무제 원봉 2년(기원전 109)에 조선을 정벌하여 만의 손자 우거를 죽이고 그 지역을 분할하여 4군을 설치하였다. 옥저성으로 현도군을 삼았다. 뒤에 이(夷), 맥(貊)의 침략을 받아 군을 구려의 서북쪽으로 옮겼다. 지금의 이른바 현도 고부(故府)라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옥저는 다시 낙랑에 속하게 되었다. 한 나라는 그 지역이 넓고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단단대령(單單大領)의 동쪽에 있는 지역을 나누어 동부도위(東部都尉)를 설치하였다. 불내성(不耐城)에 치소를 두어 영동 7현을 통치하게 하였다. 이 때 옥저도 모두 현이 되었다. 건무(후한 광무제 연호) 6년(30년)에 변경의 군을 줄였는데, 도위도 이때 폐지되었다. 그 후부터 현에 있던 우리머리(渠帥)로 모두 현후(縣侯)를 삼았다. 불내, 화려(華麗), 옥저 등의 모든 현은 전부 후국이 되었다. 이들 이적(夷狄: 오랑캐)들은 서로 침공하며 싸웠다. 오직 불내예후만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조(功曹), 주부 등의 제조(諸曹)를 두었는데, 예인(濊人)이 모두 차지하였다. 옥저 여러 읍락의 우두머리들은 스스로를 삼로(三老)라고 일컫는다. 그것은 옛 현이었을 때 제도이다.
 나라가 작아 큰 나라의 틈바구니에서 핍박을 받다가 결국 구려에 신속(臣屬)케 되었다.  구려는 그 중에 대인(大人)을 두고 사자로 삼아 함께 통치하게 하였다. 또 대가(大加)로 하여금 조세를 통괄 수납케 하여 맥(貊), 포(布), 어(魚), 염(鹽), 해초류 등을 천리나 되는 거리에서 져 나르게 하였다. 또 동옥저의 미인을 보내게 하여 종이나 첩으로 삼았으니, 그들을 노복처럼 대우하였다. 동옥저의 토질은 비옥하며 산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어 오곡이 잘 자라며 농사짓기에 적합하다. 사람들의 성질은 질박하고 정직하며 굳세고 용감하다. 소나 말이 적고 창을 잘 다루며 보병 전투를 잘한다. 음식, 주거, 의복, 예절은 구려와 비슷하다.

 위략 : 그 나라의 혼인하는 풍속은 여자의 나이가 10살이 되기 전에 혼인을 약속한다. 신랑집에서 맞이하여 장성하도록 길러 아내를 삼는다. 성인이 되면 다시 친정으로 돌아가게 한다. 여자의 친정에서는 돈을 요구하는데, 돈을 지불한 후 다시 신랑집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장례를 치를 때에 큰 나무 곽(槨 : 덧널)을 만든다. 길이가 10여 장이나 되며 한쪽 머리를 열어 놓아 문을 만든다. 사람이 죽으면 시체는 모두 가매장을 하는데, 겨우 형체가 덮일 만큼 묻었다가 가죽과 살이 다 썩은 다음에 뼈만 추려 곽속에 안치한다. 온 가족을 모두 하나의 곽속에 넣어 두는데, 죽은 사람이 숫자대로 살아있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나무에 모양을 새긴다. 또 질솥에 쌀을 담아서 곽문 곁에다 엮어 매단다.

관구검이 구려를 토벌할 때 구려왕 궁(동천왕을 말함)이 옥저로 달아났다. 군대를 진격시켜 공격해 옥저의 읍락을 모조리 파괴하였다.. 3천여 급을 목베거나 포로로 사로잡았다.  궁은 북옥저로 달아났다. 북옥저는 일명 치구루(置溝婁)라고도 한다. 남옥저와는 8백여 리 떨어져 있다. 그들의 풍속은 남북이 서로 같으며 읍루와 접해 있다. 읍루는 배고 타고 다니며 노략질하기를 좋아하므로 북옥저는 그들을 두려워한다. 여름철에는 언제나 깊은 산골짜기의 바위굴에서 살면서 수비하고 겨울철에 얼음이 얼어 뱃길이 통하지 않아야 산에서 내려와 촌락에서 산다. 

 왕기(王 )가 별도로 군대를 보내 궁을 추격, 동쪽 경계 끝까지 갔다. 그 곳의 사는 노인에게 물었다. " 바다 동쪽에 또 사람이 사느냐" 노인이 대답하였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어느날 배를 타고 동쪽으로 흘러가 한 섬에 도착하였다. 그 섬위에 사람이 살고 있었으나 말을 서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들의 습속은 해마다 7월에 동녀(童女)를 구해 바다에 집어넣는다." 또 말하였다. "바다 가운데 어떤 나라가 있는데, 그 곳에는 순전히 여자만 있고 남자는 없다" 또 말하였다. "바다 가운데 떠올라 있는 베옷 입은 사람을 건졌다. 그 시체는 마치 중국사람 같고 입은 옷의 두 소매 길이가 3장(丈)이었다. 또 난파되어 해안에 밀려온 배 한 척을 잡으니 그 배에 있는 사람의 목 부분에 또 얼굴이 있었다. 사로잡아 말을 걸어 보았으나 서로 통하지 않았고 음식을 먹지 않고 죽었다. " 그 지역은 모두 옥저의 동쪽 큰 바다 가운데에 있다.

Posted by 빈구름
,